저 자 : 정창권 박사
필자는 회복력이라는 주제를 3회 연속 다루고 있다. 지난 두 번의 글에서는 수출용 바나나 품종의 멸종 위기와 원자력 재난의 위험성을 언급하면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생태계의 다양성과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에서 그 답을 구하고자 했다. 이번 호에서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위험요인과 회복력을 높이는 사례와 전략을 소개하고자 한다. |
경영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월간지인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2014년 4월호에서 이례적으로 생태학 분야에서 다룰 법한 주제인 회복력(resilience)을 커버스토리로 삼았다.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생태계가 산불이나 가뭄 등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아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전 균형을 되찾는다는 이 단어가 기업 경영에도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가 자연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하다.
인류가 문명을 만들면서 대가도 지급하지 않고 풍덩 풍덩 갖다 쓴 자연 자본(natural capital)의 경제적 가치는 과연 얼마나 될까. 코스탄자(Costanza)와 그 연구원들은 이미 1997년에 생태계 서비스(ecosystem service)의 경제적 가치를 연 33조 달러로 추정했다. 당시 지구 전 세계 나라의 국민총생산(GNP)이 18조 달러였으니 인류 문명이 만들어 내는 가치에 두 배 정도의 혜택을 자연으로부터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고마움을 외면한 대가는 끔찍하다.
2011년 태국에서 발생한 대홍수 때문에 수많은 다국적 기업의 생산 공장이 물에 잠기면서 큰 피해를 보았는데, 도요타 단일 회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피해액이 1조 5천억 원 규모였다. 하지만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을 강타했을 때는 공공시설 기능 마비로 생긴 경제적 손실이 6조 원에 달했으며, 2013년 태풍 하이언이 필리핀을 강타할 때는 사망자가 6,000명에 이르렀고, 경제적 손실도 14조 원에 이르는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액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이런 재난 앞에서는 어떤 기업도 정상적인 경영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앞선 기업들은 기상 이변 현상과 자원이 고갈되는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발 빠르게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형 할인 마트 월마트는 어떤 기상 조건에서도 운영할 수 있도록 각 매장이 사용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사용률을 2020년까지 현재 수준보다 600% 증가시키는 목표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두루마리 휴지 안에 있는 휴지 말이 봉은 펄프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펄프 가격이 오르면 수익성이 떨어지니 킴벌리 클락이라는 회사는 아예 휴지 말이 봉을 없앴다. 코카콜라는 최근 기업들에 쓴소리를 날리는 소비자 연맹과 그린피스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프로젝트에 숙적인 펩시도 같이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음료수를 시원하게 해 주는 냉장고의 핵심 요소이자 환경 오염의 주범인 냉매를 대체하는 연구 프로젝트다. 이런 기업들의 움직임은 주목을 받고 박수를 받아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경영 환경은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외침은 경영진과 종업원 간 사이의 극단적인 소득격차 때문에 더 힘을 받고 있어서 기업은 눈치 보기 바쁘다. 이런 와중에 극단적인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이라는 또 다른 환경 위험을 직면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영전략 컨설팅 회사인 멕킨지가 조사한 바로는 사람들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하향 추세를 보이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 생산 비용이 증가하는 충격과 소비자가 지갑을 닫게 되면서 매출이 감소하는 충격을 받게 된다. 여기에 경쟁사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을 때는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충격까지 받게 된다. 이런 자연환경 변화의 충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은 복원력을 키우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노력만으로 시스템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위험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내부에 적을 키우고 있다.
2013년 1월 미 연방항공국(FAA)은 항공사에 한쪽 분량의 특이한 권고문을 보냈다. 항공기 조종사들에게 적절히 수동 비행을 하도록 권유하라는 내용이었다. 조종사들이 자동항법 장치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항공기를 복원시키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문화 비평가 니컬러스 카(Carr)는 2014년 9월에 출간한 “유리감옥”이라는 저서에서 이런 형상을 자동화가 불러온 어두운 미래의 모습이라고 했다. ‘유리 감옥'은 고도로 자동화된 조종석(glass cockpit)을 말한다. 인류 문명은 자동화를 통해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만 바라봐서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 자동화는 분업화와 전문화와 함께 고도로 효율적인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효율성을 고도화하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 발전의 엔진이라고 칭송받던 가치가 인류를 위험하게 만드는 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업화, 전문화가 만들어지지 전에는 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네 일이었다. 뒷산에 불이 났다고 생각해 보자. 예전에는 뒷산 산불은 우리 모두의 문제였고 모두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나르며 불을 껐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빨리 출동하지 않는 소방서를 탓하면서 불구경한다.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효율성 높은 사회의 단상이다. 이렇게 전문화, 분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좁아졌고 더 넓고 깊게 생각하는 훈련을 안 하게 되면서 나 외의 일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대가를 치르고 만들어진 효율성은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덜 효율적인 대안을 제거하고 인간이 만드는 시스템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의 성장 욕심이 더해질 때 비극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2007년 GM을 제치고 한때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으로 올라선 도요타 자동차는 아직도 생산 시스템에 관한 한 최고의 명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른 이후 양적 확산에 치중하면서 세계 시장별로 다양한 차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다 보니 관리해야 할 경우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결국 2009~2010년 대규모 리콜 사태라는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서울대 국제대학원 김현철 교수는 도요타의 실패는 바로 복잡성 관리의 실패라고 진단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 시스템 구조를 더 깊이 들여야 보면 다음과 같다. 다양한 시장 수요를 반영하려는 노력의 결과 다양한 상품이 만들어지면 상품 구색이 좋아져 판매량 증가로 이어진다. 그리고 매출 성과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려는 동기부여는 증폭된다. 이런 동기부여는 상품 개발과 매출로 이어지게 되면서 피드백 구조(되먹임 구조)를 만든다. 선순환처럼 보이는 이 반복되는 과정은 기업 내부에서 관리해야 하는 시스템의 복잡성을 급속도로 증가시킨다. 이 때 성장의 속도를 늦추면서 복잡성을 감당할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성장의 욕심 때문에 성장의 속도를 늦추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복잡성은 관리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서 사건・사고・재난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도요타의 사례는 선순환 구조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맞이해서 악순환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 확대 해석하면 복잡성과 성장에 대한 본능이 인류 문명을 만들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인류 문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스템의 복원력을 키우는 노력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이것은 지혜이고 용기다.
이 글에서는 기업 사례를 들어 문제와 대안을 언급했지만 비단 기업만 국한해서 생각할 일은 아니다. 얼마든지 우리 지역의 문제, 우리 조직의 문제, 우리 국가의 문제로 확대할 수 있다. 생태계에서 교란(disturbance)은 태풍 불, 홍수, 가뭄, 지나친 방목, 그리고 인간 활동 같은 것으로 군집을 변하게 하여 생물을 없애고 자원의 이용 가능성을 바꾸는 사건을 말한다. 물론 모든 교란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적정 수준의 교란은 오히려 종(種)의 다양성을 도와주는 조건을 만들어준다는 이론도 있다. 하지만 복잡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경제・사회 생태계는 갈수록 복잡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사건・사고・재난의 빈도와 강도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즉, 갈수록 적당한 교란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책과 자원은 사건・사고・재난이 안 일어나도록 예방하는 데에 집중하기보다 사건・사고・재난이 일어났을 때를 가정하고 피해를 줄이고 더 좋은 생태계로 만들 수 있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바로 복원력(resilience)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 복원력의 핵심은 다양성에 있다. 일견 논리의 비약처럼 보이지만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고 키운다면 희망은 있다.
자선 단체 중에서 세계 최대 규모이며 가장 영향력 있는 NGO 중 하나로 꼽히는 록펠러 재단은 리질리언스에 대한 지원과 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록펠러재단 대표 주드 로딘(Judth Rodin) 박사가 지난 11월 'The Resilience Dividend(리질리언스 배당 이익)'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주위를 환기할 정도다. 참고로 로딘 박사는 이 책에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외부의 교란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위험을 언급하면서 복원력의 역량을 강조하고 있고, 리질리언스 역량이 높아서 피해를 덜 보는 것도 이득이지만 리질리언스에 투자해서 이익을 보는 것 역시 이득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 역시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제3섹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불같이 일어나고 있다. 협동조합 운동과 사회적 기업, 그리고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 활동에 대한 관심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물론 고용 창출이라는 국정과제라든지 갈수록 사회에 눈치를 보는 기업들의 활동에서 시작했다고 그 한계를 지적하는 시각도 있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 우리 사회 시스템의 복원력을 키우는 데에 일조할 것이다. 현재 국회 재정위원회에서는 여야가 각각 발의한 사회적경제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매우 환영할 만하다. 국가와 사회의 자원이 효율성이 높은 곳에만 집중하지 않고 당장에는 효율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성을 높이려는 시도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지혜로워지는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복원력을 키우는 노력도 해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동화를 거부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불편한 것을 애써 외면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다. 좀 불편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든지 노동이 주는 달콤함을 찾아본다든지 우리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먹거리에 관심을 두는 것 모두 해당한다. 지난 11월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제인 구달은 최근 저서 “희망의 씨앗”에서 서바이버(survivor)라는 독특한 나무를 소개했다. 911테러 사건이 일어난 세계무역센터 빌딩에서 살아남고 잘 회복된 돌배나무다. 그렇다. 우리가 희망을 품고 복원력을 위해 노력한다면 테러라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이 나무처럼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작은 곳에서부터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 시점이다.
출처: 정창권. (2014) 떴다! 리질리언스. Big Issue no.98 , 2014, December 15, pp.2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