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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양성과 잉여의 재 발견, 그리고 두레와 품앗이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2019.01.07 | 조회수: 206

저      자 : 정창권

내용감수 : 이남숙 (이화여자대학교 에코크리에이티브 협동과정, 식물분류학 전공 교수)

 


<무식한 놈> - 안도현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나는 무식한 놈이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가 국화를 뜻하는 것도 몰랐으니 말이다. 우리나라 식물분류학의 권위가인 이화여대 이남숙 교수를 포함해서 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거의 모두 이 짧은 시를 좋아한다. 이 시만큼 식물의 다양성에 경외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식물을 사랑하게 만든 시가 또 있을까. 그래서 이 시를 읽고 자신을 탓하고 절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국화 중에서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꽃 색깔이라고 한다. 보라 색조라면 쑥부쟁이, 흰색 또는 붉은 색조라면 구절초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노란 색조를 보고 감국 또는 산국이라고 하면 주위에서 달리 볼 것이다.


지난 호 칼럼에서 필자는 유전적 다양성이 없이 단일품종으로 수출되고 있는 바나나 품종이 곰팡이의 습격에 멸종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바나나를 수출하기 위해 효율성을 극대화한 결과가 단일 품종이었고 이 때문에 외부의 작은 충격(곰팡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내용이다.


바나나 멸종위기와 후쿠시마 원전 사태처럼 사고・재난이 끊이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알아두면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개념이 있다. ‘정상 사고’(normal accident)라는 것인데 예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찰스 페로우가 1984년에 동명의 책으로 선보였다. 페로우는 이 책에서 사전 예방 중심의 정책에서 사후 대처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을 강조한다. 그는 사고・재난을 마치 감기처럼 자연스러운 감기에 안 걸리려고 노력해 본들 소용없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더 나아가 감기에 걸리고 치료되는 과정에서 감기가 우리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고 감기에 걸리기 이전에 무너진 생체 균형을 다시 회복시키는 순기능까지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감기를 평생 친구처럼 대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사회 시스템이나 환경 시스템에서도 사고(accident)는 뭔가 문제가 있는 시스템을 다시 복원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뜻에서 정상(normal)이라는 것이다.


모두 경험하다시피 감기에서 나아지는 과정이 고통스럽듯이 어떤 시스템이나 복원되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르는데 문제는 재난의 크기가 갈수록 커지고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는 점이다. 왜 재난의 크기와 강도가 갈수록 커지는 걸까. 그리고 극심한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이 질문의 답을 독자와 풀고자 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효율성을 높이려고 할 때는 언제나 뜻하지 않은 재난을 겪게 된다.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인간은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추구하게 되고,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복잡성은 급속도로 증가하게 된다. 이 때 자본주의의 핵심 가치인 분업은 복잡성에 부채질하게 된다. 이 복잡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곳의 작은 결함이 전체 구조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게 된다. 수출용 바나나도 그렇고 더욱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원자력도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고도로 복잡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은 대체 가능한 대안을 제거한다. 단일한 품종으로 재배하고 운송하기 바쁘다 보니 바나나의 다양한 품종이 매장에 선보일 여지를 없앴다. 원자력보다 더 에너지 효율이 높은 에너지가 없다 보니 대체 에너지를 개발할 여지를 없앴다. 그 결과가 멸종위기의 바나나와 후쿠시마 원전 사태이다. 이렇게 인간이 개입한 시스템의 구조가 갈수록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사고와 재난은 앞으로 자주 그리고 크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보다 사고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빨리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복원력(Resilience)을 키우는 방법을 어디에 배울 수 있을까. 바로 우리 옆에 있다. 복원의 귀재인 자연 생태계는 우리 옆에서 늘 속삭이면서 해결책을 들려주고 있다.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식물들의 처절한 몸부림, 잉여성.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서 근친교배를 하지 않는 식물의 지혜는 매우 다양하다. 예외는 있지만, 종자식물이 다양성을 가지기 위해서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과 만나는 수분(受粉)과 수정의 과정을 거쳐 열매를 맺고 번식을 위해서 본격적으로 씨를 퍼트리는 과정을 살펴보자. 우선 대부분의 식물이  자가불화합성, 소위 근친교배를 안 하려는 전략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다. 첫째는 은행나무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것처럼 구조의 차이를 두는 전략이고 둘째는 꼬마 남자와 성숙한 여인이 한집에 있는 것처럼 같은 꽃에서 암술과 수술의 성숙 시기에 차이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수술의 꽃가루가 자유낙하 해서 같은 꽃 안에 있는 암술에 떨어진다고 해도 수정되지 않는 식물이 많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수술은 필사적으로 멀리 있는 꽃에 눈길을 주고 자신의 꽃가루를 뿌린다. 이런 수분 과정을 거쳐서 열매를 맺으면 그 다음에 씨를 퍼트리는 전략 역시 독특하다. 일단 씨를 멀리 퍼트리고 본다. 모(母)식물과 가까울수록 영양분을 놓고 모식물과 경쟁하게 되거나 모식물을 겨냥한 포식자에게 희생 되기 때문이다. 멀리 퍼트리는 방법 역시 가지가지다. 난과(科) 식물처럼 바람을 이용하는 녀석, 수생식물처럼 물을 이용하는 녀석, 봉선화처럼 자기가 직접 산포하는 녀석, 그리고 동물의 먹잇감이 되거나 먹잇감과 같이 움직여서 동물의 동선을 따라가는 녀석들이 있다. 이때 사격 자세로 정조준해서 한 발 한 발 씨앗을 퍼트리는 식물을 상상할 수 없다. 엄청난 수의 종자를 쏟아 붓는다. 난과 식물의 경우 1g의 열매에 200만 개~400만 개의 씨앗을 품고 있다고 한다. 이런 어마어마한 잉여성이 있어야 다양한 변이체를 만들고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다양성과 잉여성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볼 수 있고, 다양성은 잉여성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양성과 잉여성 그 너머에는 두레와 품앗이가 있다.

식물이 보여주는 공생전략 기생전략의 다양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런 다양한 전략을 통해서 숲을 이루고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난초는 공생균이 필요하다. 그래서 난초만 덩그러니 옮겨 심으면 자라지 못한다.  반드시 난초가 자랐던 흙을 정성스레 옮겨줘야 한다. 중남미에 서식하는 어떤 아카시아와 개미와의 공생전략은 유명하다. 아카시아 가시에 둥지를 튼 개미는 아카시아로부터 꿀을 받고, 아카시아는 개미로부터 생존권을 보호받는다. 어느 정도냐면, 호전적인 이 개미는 아카시아를 호시탐탐 노리는 초식동물과 결투를 벌이고, 아카시아 나무 근처의 잡풀을 제거해서 아카시아가 맘 편하게 영양분을 확보하도록 도와줄 정도다. 이런 공생관계 협업관계는 사실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레는 온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서 농사일을 같이 하는 공동노동 조직이면서도 오락 프로그램이다. 농악대의 연주와 춤도 등장한다. 각기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농사일을 돕는 행위다. 그야말로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한데 어울려서 농사일을 돕곤 했다. 또 품앗이는 어떤가. 품앗이의 겉모양은 일대일 노동 교환이다. 하지만 각박하게 각자의 노동 가치를 따지는 일은 없다. 그냥 가서 일해주는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신뢰를 바탕으로 각자의 상황을 인정해 주며 노동을 교환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전통문화에는 각기 다른 모습을 인정해 주는 다양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것이 우리 한민족 고유의 관습인 것이다. 어떤 연구자는 이런 우리의 행위를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몬순기후면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산악지대가 많다. 이 두 가지 환경이 결합하면서 비가 많이 내리는 울창한 숲이 만들어졌다. 이 울창한 숲에 산악지형 더해지면서 우리 문화는 단절의 문화가 만들어진다. 강만 건너도 노랫가락이 다를 정도로 다양성이 풍부한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우리 민족이 숲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의 순리에 익숙한 것이 아닐까.  너와 내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문명이 들어오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양성이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원래 우리 민족은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행동을 용인하는 민족이었다. 그렇게 한 민족의 문화가 만들어졌다.


문명과 경제가 발전하면서 에너지의 혁명, 교통의 혁명, 정보통신의 혁명 등 어지러운 각종 혁명적 기술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갈수록 사는 게 편리해지고 사회 시스템의 효율성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복잡성이 증가하면서 작은 기침에도 중병을 앓게 되는 현실 역시 맞닥트리고 있다. 조직의 의사결정자는 다양성과 잉여성에 대한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일반인은 자신의 처지에서 다양성과 잉여성을 다시 살펴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11월 18일에 표준협회에서 주관하는 2014년 대한민국 좋은 기업 시상식이 열렸다. 전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가지는 GWP(Great Work Place, 일하기 좋은 직장) 지표와 같이 기업을 평가하는 지표는 매우 많다. 그런데 한국표준협회와 서울대 경영정보 연구소가 개발한 이 ‘대한민국 좋은 기업' 지표에는 CEO의 리더십, 창조경영, 고객만족 등의 지표 외에 기업의 사회공헌 지표를 포함해서 기업이 사회와 얼마나 공생하려고 하는지를 대놓고 질문했다고 한다. 서울대 김수욱 교수는 이제 기업은 사회의 고통과 갈등뿐 아니라 번영과 책임 공동체 유대감을 모두 공유하는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기업이 수상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다만 비슷한 지표와 비슷한 시상식이 많아

지면서 우리 민족의 DNA에 있는 두레와 품앗이의 전통이 다시 재조명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 문학에 한 획을 그은 대하소설 ‘객주’의 저자 김주영씨가 지난 11월 8일 청송에서 개최한 객주문화제에서  ‘객주’의 핵심 정신이라면서 추천한 대사가 있다. 이 대사에서 우리 민족의 다양성과 잉여성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길가에 피는 꽃이 임자는 없으되 이름은 있다 하였소, 세상 만물 중에 이름이 있는 것치고 어느 것 하나 허술히 여겨지는 것이 있소?”


다음 원고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복원력(resilience)을 높이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사례와 기업들이 앞장서서 복원력을 높이는 최신 흐름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출처: 

정창권. (2014) 다양성과 잉여, 그리고 두레와 품앗이. Big Issue no 97, 2014, December 1, pp. 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