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학 강단만큼 미국 편향적인 공간도 없다. 한국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은 주로 미국 경제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다. 학점을 취득하려면 ‘미시경제학’이라는 이름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을 결코 피해갈 수 없다. 공무원이 되려고 해도 이를 공부해야 하며, 경제학 전공 교수를 임용할 때에도 이러한 ‘주류경제학’적 사고에 투철한 사람, 그리고 주류경제학의 전통이 강한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우대를 받는다. 그러나 거듭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유럽과 일본을 비롯해 미국의 경제학계에서도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대안으로서 제도경제학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올해 노벨경제학상이 제도주의 이론에서 업적을 남긴 엘리노어 오스트롬과 올리버 윌리엄슨에게 주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비주류경제학’인 제도경제학을 소개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도전임이 분명하다.
제도경제학은 경제에서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도가 중요하다’는 점은 1970년대 중반 이후 경제학에서 주류 또는 비주류에 관계없이 경제 시스템을 분석하는 데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이 공유해온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하에서 제도의 ‘발견’ 또는 ‘재발견’을 통해 제도경제학이 새롭게 재생된 이후 지금까지 약 30년간은 그야말로 제도주의적 경제학의 전성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학계에서는 ‘제도’를 강조하는 경제학을 이른바 ‘이단파 경제학’으로 규정하면서 늘 무시해왔다. 이러한 ‘주류경제학’에서는 한 나라의 사회관계 및 문화적 특성에 대해 보편적인 합리적 선택이론이 그 구체성을 견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가되는 조건일 뿐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경제학 이론 내에 사회적·역사적 요소를 도입하는 것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바로 이러한 한계 탓에 이 땅에서 경제학을 배우는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경제사회 시스템의 역사적 다양성 또는 특수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역사적·재생산적 관점을 중요시하는 제도경제학은 미국의 경제학이 지배적이지 않은 유럽 및 일본 등의 대학 강단에서 성행하고 있다. 결국 이 나라들의 경제학도들은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 및 문화 등의 영역을 고려한 폭넓은 사회적 관점과 수세기에 걸친 역사적 시간을 고려한 장기적 관점에 서서 경제 시스템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취업해 외국 시장조사를 할 때에도 상사에게서 경제사회 시스템의 다양성과 특수성에 대한 이해를 강요당하고 현실 세계와는 전혀 무관한 시장조사만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제도경제학은 비단 학문의 다양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진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더 나아가 세계화 시대에 국가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국내에 제도경제학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서적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제도경제학 분야의 거의 모든 학파들의 이론을 총망라하고 있는 이 책은 학술서로서, 또 교재로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1장 제도주의의 원조
1 슈몰러와 독일 역사학파
2 베블런의 진화론적 제도주의
3 해밀턴: 제도학파 경제학
4 커먼스: 조직과 제도
5 폴라니와 ‘제도화 과정’으로서의 경제
제2장 오스트리아학파와 질서자유주의
1 멩거: 유기적 접근과 실용주의적 접근
2 하이에크의 질서와 규범
3 오이켄과 질서자유주의
제3장 신제도학파 경제학
1 윌리엄슨과 거버넌스 메커니즘
2 노스: 공식적 제도와 비공식적 제도
3 게임이론과 비교제도분석
제4장 현대 유럽의 여러 학파
1 조절이론: 역사적 관점을 중요시하는 거시경제학
2 콩방시옹 경제학: 규칙(rule)을 해석하다
3 호지슨과 구제도학파 경제학의 쇄신
제5장 제도주의 경제학에서의 통일성과 다양성
1 주요 공통 주제
2 두드러지는 다양성
3 이론적 차이
4 한정적인 대상, 일반적인 이론